New Bara's Blog/Complaint

사진을 버렸다.

bhbara 2012. 6. 20. 04:00

사진을 버렸다.

 

 엄밀히 말하면 처음은 내 의도가 아니었다. 하드웨어의 결함으로 인한 복구 불가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사라져 버릴 운명이었으니까. 2002년부터 찍었던 사진을 한 곳에만 저장해뒀던 나의 부주의함이 원인이었다.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싫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은 자신만의 소유물이자 절대 남에게선 느낄 수 없는 절대적이고 독자적인 느낌이 있었고, 그렇게 패쇄적인 것은 결국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져 버릴 확률이 높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리고 찾아오는 공허함.

 

 여기까지 적은 내용은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만큼 엄청난 충격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3일 연속 술을 마실 정도였으니까. 술 잔을 비우고 비워도 계속 생각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하니까. 마치 헤어진 여자친구와의 추억이 떠오르듯 무수히 많은 기억이 떠올랐다. 잊고 있었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사람이 떠올랐다. 추억이 떠올랐다. 그 때 내가 행한 행동, 결정, 내 시선이 한꺼번에 나에게 밀려왔다. 내 키보다 훨씬 높은 파도가 나에게 다가옴을 느꼈고, 왠지 무서워졌다. 감당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사진을 디지털화해서 폴더에 담아두는 것, 혹은 앨범에 끼워넣는 것. 난 깨달았다. 저장이라는 개념은 사람의 두뇌에서 그 것을 빼내어 적당한 곳에 두고 차단을 시켜버리는 것과 같다는 것을. 물론 처음 그 양이 적었을 땐 문제가 없었다. 난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처럼 아주 빠른 시간에 내가 원하던 기억을 꺼내 그것을 보면서 회상에 잠기곤 했다. 그 모든 것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 착각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일을 하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새로운 곳을 방문하고, 전에 먹었던 집보다 이 집의 고기의 육즙이 더 풍부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잊혀짐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소중한 것을 자신도 모르게 잊고 살아가는 걸 잊고 살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하루 종일 시간이 걸릴지라도 그 모든 것들을 다시 다 꺼내서 뇌 안에 새겨넣었어야 했다. 그 것은 잊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기 때문에 그랬어야 했다.

 

 머리를 쥐어 짜내면서 마치 다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는 것과 같이 기억해내려 애쓰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리고 딱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쓰나미 몰려오듯 한꺼번에 찾아오는 기억의 파도도 고통스럽다. 전자는 기억해내고 싶어서 고통스럽고, 후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도 기억이 나서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 둘은 기억이라는 것이 야기시키는 고통의 상반된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것의 적정선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적정선 따위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건 인간이 조절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영역이니까.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은 전혀 멋있지 않다. 그건 너무 씁쓸한 결과물만 낳을 뿐이다.

 

 따라서 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몇가지 방법 중 포기라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포기는 적절하게 사용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순식간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녹아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절대 포기 할 수 없는 것들도 존재하겠지만(상대적인 가치관에 의해 결정된다.)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 난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사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 버린 것이라 표현하기로 결정했다. 좋았던 기억이여, 안 좋았던 기억이여, 나의 과거. 모두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자신의 결정에 의해 모든 것이 마무리되면 적어도 위안감은 느낄 수 있으니까. 훗 날 아쉽더라도 스스로 결정했기에 술 한 잔 하면서 털어내기 쉬워지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난 이 순간부터 이 고통에게 잘가라고 인사를 건낼 수 있게 됐다. 이제야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