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Bara's Blog/Complaint

비가 왔던 5월 14일 오후의 기록

bhbara 2012. 6. 18. 02:01

 

 

 

 

 비가 계속 내려서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 같은 날이다. 하늘마저도 계속 같은 표정을 짓는 것처럼 하루 종일 흐리기만 하다. 좋다. 이런 느낌.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환상은 아주 잠시나마 마약같은 행복감을 느끼게 해줄 수 있으니까. 우산을 대충 어깨에 걸치고 쭈그려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는 기분이 어떤지 비흡연자 (물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담배를 피지 않았던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들은 분명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다른 이가 쭈그려 앉아 담배를 건내고 불을 붙여준 후 우산을 아주 조금 더 그 사람 쪽으로 치우치게 하여 그 사람을 비로부터 보호할 때, 바로 그 때 느껴지는 내 젖은 어깨. 하지만 담배는 절대 비를 맞아선 안되며 나보다 더 소중한 것처럼 여기는 걸 깨달았을 때, 난 실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실소를 놓치지 않고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렇게 웃어?" 라고 질문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느껴지는 공기의 떨림. 이건 분명 흡연자들의 특권이라 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오늘은 비가 계속 내린다. 시간은 오후 4시 32분. 끝도 없이 내리고 있다. 내 시야엔 몇 명의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 중 눈에 띄는 한 명은 이 정도 비는 아무 감정조차 들지 않는다는 듯 우산도 없이 우두커니 비를 맞고 서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뒷모습만 보고 있어서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아주 바른 정자세로 서있는 것을 보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은 무척 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혹은 자살을 하기 직전 내리는 비에 자신을 조금이나마 정화시켜보겠다는 여린 마음을 소유한 사람일 수도 있겠으며, 아니면 그저 건망증이 심해서 아침에 우산을 깜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난 "아... 지금 이 순간 난 3명의 사람을 그 짦은 순간에 창조해냈구나." 라며 짧은 한 숨을 내쉬었다. 1분에 3명의 사람을 창조해낸다고 생각했을 때 1시간이면 180명, 하루면 4320명. 대충 잠자는 시간과 갈수록 무뎌지는 어쩔 수 없는 창조성의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적어도 1000명 이상의 사람을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1000가지 종류의 가상 이미지와 난 싸우게 되는 것이다. 보나마나 TKO 패를 할 것 같은 존재와의 대결이지. 어쨌든 난 저 비를 밎고 있는 사람을 오늘 처음 봤고 말조차 건네지 않았으니 당연히 저 사람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다행이도 저 사람이 누구인지 무척 궁금하진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사실에 무척 감사했다. 만약 누구인지 궁금했다면 난 1분에 3명씩 늘어나는 사람들 속에서 누가 가장 정확한 사람인지 고르기 위해 아무 것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쌓여갈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늘어나는 가상의 존재에 짖눌려 질식사를 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급하게 위협을 느끼면 결국 내 안에 그 존재들을 M60 기관단총으로 난사하여 갈기 갈기 찢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것들은 유유히 연기처럼 날 비웃듯 사라져버리겠지. 그건 분명히 "가상" 의 존재였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간만에 줄담배를 태우기 위해 담배 한가치를 더 꺼냈다. 최근엔 담배를 피는 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일이 바쁘기 때문이지만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건강해지기 위해 그러는 거라며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짓는다. 난 건강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대해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확신에 가득찬 말을 듣고 또 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그 무엇도 정해진 것이 없으니까. 예전에 말버릇이 "이게 최고지!" 였던 사람에게 "알겠으니까 그 걸 품에 안고 꺼져버려요 좀." 이라고 이야기해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게 했던 적이 있었다. 딱히 다른 최고가 있어서 그렇게 이야기 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 생각에 동의하기 싫었을 뿐이다. 아마 그 날 내가 기분이 정말 좋았다면 이렇게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다른 것이 최고가 되면 결국 넌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거야. 그리고 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쓰레기 버리듯 담배 꽁초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담배 꽁초는 쓰레기가 맞잖아?" 라는 생각에 혼자 키득키득 웃었다.

 

 난 두 명의 괴물과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괴물들은 서로를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났지. 하지만 그 둘은 서로를 죽일 수가 없다. 그 것은 그 괴물들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음 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 막혀 더 큰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점점 타들어간다. 그을려간다. 냄새가 난다. 이 냄새를 없애야한다며, 이 불만을 해소해야 한다며 이런 저런 궁리를 해보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내면은 점점 더 썩어들어가기만 했고, 결국 그들은 좀 더 연약한 존재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수많은 종류의 폭력을 행사한다. "내가 느꼈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하지만 그들의 날카로운 악의에 연약한 존재들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흉터와 같은 아픈 기억을 안게 된다. 그리고 그들도 점점 괴물로 변하가겠지. 그런 괴물들과 함께 살고, 또 그런 행위를 목격하는 건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그래서 난 3번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타들어가라 내 가슴이여. 괴물이여. 이왕이면 까맣게, 무엇인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당연히 거짓이라고 생각이 들 때까지 까맣게."
 이렇게 속으로 조용히 이야기하며 순식간에 담배를 다 피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깜박 잊었다는 생각이 들어 비를 맞고 있는 사람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이미 그 사람은 사라지고 난 뒤였다. 비도 그쳤다. 모든 것은 다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것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을 것 같아서 발걸음이 5kg 정도는 무거워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펜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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